
줄거리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영국. 독일군의 공습을 피해 피터, 수잔, 에드먼드, 루시 네 남매는 시골에 위치한 커크 교수의 대저택으로 피신하게 된다. 지루한 일상 속에서 숨바꼭질을 하던 막내 루시는 우연히 빈 방에 덩그러니 놓인 낡은 옷장 속으로 숨어든다. 옷장 안으로 깊숙이 걸어 들어가던 루시는 모피 코트의 촉감 대신 차가운 나뭇가지와 하얀 눈송이를 마주하며, 영원한 겨울만 계속되는 신비한 마법의 나라 '나니아'에 불시착하게 된다.
하지만 나니아는 오랫동안 '하얀 마녀'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마법으로 나니아를 영원한 겨울 속에 가두었고, 주민들은 자유를 잃은 채 살아가고 있었다. 마녀는 "아담의 아들 둘과 하와의 딸 둘이 나타나 왕좌에 앉으면 마녀의 통치가 끝나고 봄이 온다"는 예언을 두려워해 인간 아이들을 찾아내려 혈안이 되어 있었다.
루시의 형제들도 결국 나니아에 들어오게 된다. 그 과정에서 셋째 에드먼드는 하얀 마녀의 유혹에 넘어가 형제들을 배신하게 되고, 나니아는 더욱 큰 위기에 빠진다.
한편 나니아의 진정한 왕이자 전설 속 존재인 위대한 사자 '아슬란'이 돌아온다는 소식이 퍼진다.
아슬란은 네 남매가 나니아를 구할 운명을 가진 존재라고 이야기하며 그들을 전쟁의 중심으로 이끈다.
평범한 아이들이었던 네 남매는 점차 자신들의 역할을 깨닫게 되고, 나니아의 운명을 결정할 거대한 싸움에 참여하게 된다.
결말
남매들은 나니아의 정당한 지배자이자 위대한 사자 '아슬란'의 진영에 도달한다. 하지만 배신자 에드먼드를 구하기 위해서는 나니아의 고대 법칙에 따라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 아슬란은 에드먼드의 잘못과 배신을 탓하지 않고, 밤중에 홀로 마녀를 찾아가 에드먼드의 죄를 대신 짊어진 채 돌탁자 위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동생의 잘못 때문에 위대한 리더가 희생당한 것에 남매들은 깊은 슬픔과 죄책감에 빠진다.
그러나 고대의 더 깊은 마법에 의해, 죄가 없는 자가 배신자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바쳤을 때 돌탁자가 깨지고 죽음이 번복된다는 법칙에 따라 아슬란은 눈부시게 부활한다. 그 사이, 첫째 피터는 아슬란의 부재 속에서도 도망치지 않고 마녀의 대군에 맞서 목숨을 건 전쟁을 진두지휘한다. 부활한 아슬란이 군대를 이끌고 합류하면서 하얀 마녀는 마침내 소멸하고 나니아에는 마침내 찬란한 봄이 찾아온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네 남매는 케어 파라벨 성의 네 왕좌에 앉아 각각 '제왕 피터', '다정한 수잔', '정의로운 에드먼드', '용맹한 루시'라는 이름을 얻고 오랜 시간 나니아를 평화롭게 통치한다. 어느덧 어른이 된 네 남매는 숲속에서 우연히 과거 자신들이 들어왔던 옷장의 입구를 다시 발견하게 되고, 옷장을 빠져나오는 순간 다시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돌아와 대저택의 방 한구석에 엎어진다. 나니아에서의 긴 세월이 현실에서는 겨우 몇 초밖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달으며, 나니아에서의 긴 세월은 마치 꿈처럼 남게 된다.
해석
영화 <나니아 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은 거대한 스케일의 판타지 전쟁 영화처럼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세상이 정해놓은 거창한 주인공이 아닐지라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제 몫을 다하며 하루를 버텨내는 평범한 이들의 위대한 가치'를 다룬 이야기다.
우리는 누구나 살아가면서 인생을 단번에 바꿔줄 특별한 '기연'을 얻어 화려한 영웅이 되는 삶을 꿈꾸곤 한다. 혹은 내 힘으로 감당하기 힘든 시련이 찾아왔을때, 나보다 훨씬 강력한 영웅적인 존재가 나타나 내 삶을 구원하고 이끌어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그러나 <나니아 연대기>가 보여주는 이야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 나니아의 절대적인 구원자인 사자 '아슬란'은 아이들의 삶을 직접적으로 이끌어주거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 아슬란은 간접적인 도움을 줄 뿐이다. 결국 모든 선택은 자신의 몫이다.
영화 속 네 남매는 전쟁의 포화를 피해 도망쳐온 무력한 피난민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역사의 중심은커녕 자기 앞가림도 하기 힘든 '약자'이자 무대 뒤의 조연들이었다. 심지어 나니아에 들어와서도 셋째 에드먼드는 자신의 열등감과 유혹을 이기지 못해 형제들을 배신하는 지독한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하지만 영화는 우리에게 중요한 통찰을 건넨다. 아슬란은 배신한 에드먼드를 깎아내리거나 처벌하는 대신, 그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묵묵히 죽음의 자리를 향해 걸어갔다. 누군가의 성공과 구원 뒤에는 늘 이렇듯 자신의 삶을 묵묵히 내어준 존재의 이야기가 숨어있는 법이다. 에드먼드는 자신의 이름을 높이려던 이기적인 욕심을 내려놓고, 자신을 위해 희생한 존재의 진심을 깨달은 뒤에야 비로소 '정의로운 에드먼드'라는 진짜 자신의 가치를 회복한다.
첫째 피터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완벽한 영웅이 아니었다. 거대한 마녀의 군대 앞에서 칼을 쥐고 벌벌 떨던 평범한 소년이었다. 하지만 그는 도망치거나 숨지 않았다. 나에게 주어진 무거운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제 몫을 다하며 하루하루 버텨내는 '언성 히어로(Unsung Hero)'의 자세로 전쟁터의 맨 앞에 섰다.
영화 속 아슬란도 아이들의 삶을 직접적으로 도와주지 않은 것처럼 오늘날 우리의 삶을 단번에 변화시켜주는 영웅적인 존재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나의 선택이 있기에 '나'라는 존재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네 남매가 현실로 돌아왔을 때, 그들이 나니아에서 이룩한 위대한 업적과 왕의 이름은 현실의 그 누구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들은 여전히 조그만 시골 저택의 평범한 아이들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삶이 결코 가치 없지 않은 이유는, 세상이 알아주는 이름표가 없어도 그들의 내면에는 이미 세상을 마주할 당당한 용기와 존엄이 싹텄기 때문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를 평가하고 순위를 매기며 기를 죽이려 하지만, 타인의 차가운 시선에 흔들릴 필요는 없다. 거창한 무대의 중심에 서지 않아도 괜찮다. 세상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몇몇 위인들이 아니라, 이름도 없이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며 오늘을 버텨내는 평범한 우리들 덕분에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나는 나고, 내 자리를 지켜내는 이대로의 삶도 충분히 위대하다"는 마음으로 오늘을 마주할 때, 우리는 이미 내 인생이라는 서사의 가장 눈부신 영웅이다.